얼굴이 내면의 표상임을 감안하면 여행작가 박민우는 속좋은 허풍선이처럼 보인다. 늘 활짝 웃는다. 눈썹이 활처럼 둥글게 휘어지고 아래턱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박장대소한다. 그 질박한 웃음을 들여다보면 그가 걸어온 시간의 무늬가 돋을새김처럼 드러난다.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과 기쁨을 찾고, 뒤죽박죽 악다구니의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여유가 묻어난다. 위선과 악함이 없는 그 웃음의 뿌리는 저 먼 중남미에 닿아 있다.


◆ 몸으로 쓴 좌충우돌 여행기

박민우는 중남미 전문 여행작가로 통한다. 올해 초 EBS TV의 여행 프로그램인 '세계테마기행'의 콜롬비아, 에콰도르 편에 각각 출연했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을 거쳐간 50여 명의 출연자 중 거의 유일하게 2개 국가에서 진행을 맡았다. 발군의 스페인어 실력과 광대를 연상시키는 재기발랄한 진행, 시차 적응을 위해 수면유도제까지 준비해가는 철저함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출연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저를 객관화해서 화면을 통해 보는 건 생각보다 더 괴롭거든요. 그래도 끝까지 거절하진 못했습니다. 중남미로 꼭 다시 한 번 가고 싶었으니까요. 화면 속 제 꼴이 심히 거슬린다고 해도 중남미라면 감수해야죠."

그를 중남미 여행 전문가로 부각시킨 것은 여행기 '1만 시간 동안의 남미(전 3권)'이다. 2007년 여름에 1권이 출간되자마자 반응이 뜨거웠다. 멕시코를 시작으로 14개월 동안 라틴아메리카를 주유하며 써내려간 좌충우돌 여행기는 생생한 체험담과 충실한 정보로 금세 이목을 끌었다. 무엇보다 번뜩거리는 장난기의 얼굴로, 엽기적이기까지 한 표정으로 찍은 사진들과 풍부한 에피소드가 화제를 모았다.

그가 첫 배낭여행지로 남미를 정한 것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때문이었다. 아시아는 호기심이 강렬하게 일지 않았고, 아프리카는 너무 낯설고 막연해 오히려 무서웠다. 남미 역시 낯설었지만 마추픽추, 이구아수 폭포, 소금 사막, 아마존 등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들이 가슴을 뛰게 했다. 그것만 보고 와도 절대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떠나기 전까지 참 많은 사람들이 말렸습니다. 여러 번 남미를 갔다 온 사람조차 너무 위험하다고 했으니까요. 제가 원래 소심하고 별로 추진력도 없는데 그 때는 그런 경고성 발언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이미 남미라는 단어만으로도 끓어올랐으니까요. 아마도 인연이고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미 여행은 고난과 환희가 포개지는 파란만장함의 연속이었다. 거의 최저생계비로 여행을 이어갔다. 하루 숙소값은 5천 원을 넘지 않았고 세 끼 밥값은 평균 1만 원 정도였다. 군복무 시절처럼 아무리 먹어도 배고팠던 1천 시간, 허름한 숙소와 심야버스에서 선잠 잤던 900시간, 감기몸살과 배탈 등으로 아프고 외로웠던 1천800시간, 그리고 강도를 만났던 30분……. 하지만 그 1만 시간은 30여 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이었다.


◆ 친절한 중남미 씨!

중남미는 소문과 달리 그렇게 위험하지 않았다. 특정한 지역이나 시간대가 아닌 이상 모든 사람을 경계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낯선 이방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들이 많았다.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만난 카를로스도 그런 성품이었다.

"처음 보는 저에게 다짜고짜 가이드해주겠다고 나섰습니다. 차에 태우고 마을 이곳저곳을 안내해주고 밥도 먹여주고 농가에서 소젖도 짜보라고 했죠. 친절함이 너무 지나쳐서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이동할 때에도 현지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2인조 강도에게 카메라를 날치기당해 남은 돈을 털어 카메라를 새로 구입한 직후였다. 여비를 아껴보고자 배낭여행자 숙소 공유 사이트인 호스피탈리티클럽(www.hospitalityclub.org)에 가입했다. 그리고 무작정 칠레에 거주하고 있는 회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얼마 후 재워주겠다는 답변이 쏟아졌다.

"그중 한 친구 집에 가게 됐는데 정말이지 저를 재워줄만한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아주 작고 허름한 단칸방에 침대는 싱글이었죠. 하지만 그 친구는 침대를 저에게 주고 자신은 매트리스 없이 자겠다고 했습니다."

가난하지만 나눌 줄 알고 그 가난함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그 주체할 수 없는 감동에 이끌려 한국인 슈퍼마켓을 찾아갔고, 짜파게티를 사서 친구에게 끓여주며 보은했다. 남미는 사람 사이의 정뿐만 아니라 생의 지표도 되새기게 하였다. 긴 여정에서 얻은 수확 중 하나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자'는 교훈이었다. '행복은 성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오는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대학 졸업 후 잡지사에서 일했는데 업무 스트레스로 전전긍긍했습니다.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인간관계도 부담스러웠고요. 그래도 잘 참고 버틴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보니 원형탈모로 머리카락이 손바닥만큼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겁이 났고, 그래서 남미로 떠나게 된 것입니다."

남미 여행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10배는 더 좋았다. 스페인어 구사력이 일취월장했고 여행작가라는 새 직업의 단초가 되었다. 횡사했던 머리카락도 새로 돋아나기 시작했다.


◆ 중국 거쳐 중동으로 출발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웃게 만드는 특출난 여행자의 다음 행선지는 중동이다. 올 가을 선박편으로 중국에 건너가 기차와 버스를 이용해 중동까지 서진(西進)할 계획이다.

"원래는 아프리카로 떠나려고 했습니다. 남미 다음에는 어쩐지 아프리카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낯설고 야생의 활력이 살아 숨 쉬는 그런 곳이니까요."

하지만 터키와 시리아가 여행지를 바꾸게 만들었다. 터키는 본래 가장 가고 싶은 나라 중 하나였다. 또 시리아는 거의 알지 못하는 곳이었지만 인터넷에서 그곳 사람들의 환한 웃음을 만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꼭 한 번 가야할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이 여행의 이유가 된 셈이다.

"유구한 역사와 고유한 문화도 중동의 매력입니다. 문명의 발상지이자 종교의 발상지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서구의 편견 속에서 오해받고 있는 이슬람 문명을 제대로 알아보고 싶습니다."



>>>박민우의 중남미 여행 10계명

1.떠나기 전 예습을 많이 하라. 역사적인 지식이 풍부할수록 유적지나 건축물이 훨씬 재미있어진다.

2.밥은 재래시장에서 먹어라. 시장 음식이 가장 저렴하고 맛있다.

3.한국 요리를 한 가지쯤은 익혀가라. 외국인 친구에게 불고기나 고기전 같은 음식을 해주면 누구나 '인기짱'이 될 수 있다.

4.마늘 냄새를 조심하라. 한국 요리를 만든답시고 마늘 듬뿍 넣고, 손 깨끗이 안 씻으면 사람들이 당신을 슬금슬금 피할 것이다.

5.부지런한 자가 밥을 더 많이 먹는다. 아침이 포함된 호텔에 묵을 경우엔 일찍 일어나라. 늦잠 자면 아침밥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6.현지 투어에 돈을 아끼지 말라. 브라질에서 아마존 투어, 파타고니아(아르헨티나와 칠레 남부)에서 얼음 트레킹 등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건 꼭 하라. 나중엔 돈 아끼는 게 여행의 목적이 되어 버리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한다.

7.스페인어 공부는 어느 정도 하고 가라. 가서도 한 달 정도는 스페인어 공부에만 매진하라. 그 짧은 시간에 능숙하게 스페인어를 할 순 없지만, 단 열 문장이라도 알고 여행을 하면 여행의 감동과 편리함이 하늘과 땅 차이다.

8.고급 레스토랑을 즐겨라.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고급 레스토랑을 즐길 수 있다. 아르헨티나 북쪽 지방 살타에서는 1인당 1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에서 정식을 먹을 수 있었다. 가격 대비 훌륭한 식당에서 정찬을 즐기는 건 오히려 돈을 절약하는 게 아닐까?

9.버스는 도착하자마자 예약하라. 떠나는 당일에 터미널에서 버스를 알아보지 말라. 최소한 떠나기 하루 전에 버스표를 사라. 버스표가 동이 나서 며칠간 다음 버스를 기다렸던 적도 있다.

10.축구장에 갈 때는 1회용 카메라를 가져가라. 축구장은 치안이 좋지 않다. 관중이 많으니까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모두 흥분된 상태여서 오히려 더 공격적이다. 귀중품을 가지고 있으면 날치기 표적이 되기 싶다. 그렇다고 축구장에 가서 사진을 찍지 않는 건 서운하니 1회용 카메라를 지참하도록 한다.

사진/김주형 기자(kjhpress@yna.co.kr)ㆍ글/장성배 기자(up@yna.co.kr)

(대한민국 여행정보의 중심 연합르페르, Yonhap Repere)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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