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며 한파의 기세가 더욱 매몰차다. 이열치열이 있다면 이한치한도 있는 법. ‘산소도시’를 표방하는 강원도 태백은 태백산 눈 축제와 눈썰매장이 있어 아이와 어른 모두를 만족시킨다. 지구 탄생의 비밀을 공부할 수 있는 용연동굴과 고생대자연사박물관 등은 아이들의 체험학습지로도 안성맞춤이다. 강원도 지역의 대표적 전통 주거형태인 너와집에서 맛있는 토속음식까지 챙겨 먹는다면 금상첨화다.

엄마, 초등학생도 1,567m 정상에 갈 수 있대요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을까? 태백산도립공원 유일사 매표소 앞은 추위가 무색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저마다 손에는 스틱을 들고 발에는 아이젠을, 종아리엔 스패츠를 찬 모습이 전쟁에 임하는 병사들 같다. 설산 트레킹을 위해서 빠져서는 안 될 필수 장비들이다. 가까이에서 보니 건장한 청년보다는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 태백산(太白山)은 그 이름에서 오는 무게에 비해 산을 찾는 이는 남녀노소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태백산은 경상북도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 그리고 태백시를 경계로 자리한 해발 1,567m의 높은 산이다. 하지만 산행을 시작하는 지점(유일사 매표소)의 고도가 이미 해발 850m이다.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푼 듯 횡재한 기분이다.

산을 오르는 코스는 유일사, 백단사, 당골, 문수봉, 금천 코스가 있는데 이 중에서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산행이라면 유일사 코스가 적당하다. 4km 정도 되는 거리로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하지만 태백산의 진면목을 보러 왔다면 유일사 코스를 들머리로 하고 당골 코스를 날머리로 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하더라도 등산하는 데 두세 시간, 하산하는 데 한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넉넉하게 다섯 시간이면 태백산의 진면목을 모두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산 듯 죽은 듯 주목이 아름다운 태백산, 사진 찍으려면 줄을 서시오!
태백산 정상석.
유 일사 매표소를 지나면 장대비가 쏟아지듯 하늘에서 수직 낙하한 모양새를 한 전나무 군락지를 만날 수 있다. 땅에 꼿꼿이 박혀 있는 그 위용이 대단하다. 군락지를 지나면 ‘유일사 가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오른쪽은 경사가 심하고 왼쪽은 완만하다. 앞서 가는 50대 이상의 아주머니들은 마치 청소기에 빨려들듯 왼쪽 길로 줄지어 산을 오른다. 유일사까지 40분 정도 힘차게 걷다 보면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걸어온 길이 2.3km이다. 이후부터 장군봉까지는 가파른 길이 마중을 나온다. 숨이 턱밑에까지 차오르고 아이들은 “아빠, 아직 멀었어요?”라며 우는 소리를 해댄다. 그때쯤 한바탕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다. 주위를 살펴보니 저마다 나무 하나를 배경 삼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주목군락지에 도착한 것이다.

“아빠, 저 나무는 죽은 거예요, 산 거예요?” 몸통은 말라 죽은 것 같은데 초록의 잎이 무성한 나무를 가리키며 아이가 궁금한 듯 질문을 토해냈다. 답을 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아이 아빠를 불러 살짝 귀띔을 해줬다. 이어 의기양양해진 아빠는 목소리 톤부터 달라지면서 “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나무는 살아 있는 거란다. 네가 보기에 저 나무는 말라 죽은 것처럼 보이지? 하지만 저 나무 기둥 속에는 세포들이 살아 있고 뿌리를 통해 생명에 필요한 영양분을 잎까지 전달하고 있는 거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이 점을 명심해라”라며 멋지게 설명을 마쳤다. 아이는 “우와~ 아빠는 모르는 게 없구나. 우리 아빠 짱이다”라며 아빠를 치켜세웠다.

주목군락지부터 천제단까지는 평평한 언덕처럼 완만한 코스이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은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옷을 몽땅 벗어버렸다. 칼바람을 맞으며 의연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이 짐짓 대견하다. 주목의 신비로움은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와 닮았다.

여기저기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가족은 방긋 웃으며 순간의 행복을 추억으로 저장했다. 한 가족이 사진 촬영을 마치자 또 다른 가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특이하고 잘생긴 나무는 인기 만점이다. 아이돌 스타의 기자회견장이 따로 없다.

정상에 서면 차마고도를 연상시키는 풍광을 확인할 수 있다.
주목 너머로 거대한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그 위로 부지런히 돌고 있는 풍력발전기도 보였다. 잠깐 올라왔을 뿐인데 이렇게 훌륭한 경관을 볼 수 있다니. 기울인 노력에 비해 그 상훈이 너무 커 보였다.

사람 발자국이 없는 곳은 눈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꼬맹이들은 푹푹 빠지는 눈이 신기한 듯 정신없이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넉넉한 눈의 언덕은 중년 부부에게도 로맨스를 일깨운다. 영화 ‘러브 스토리’의 한 장면처럼 눈밭에 벌러덩 누워버리는 이들도 있었다. 초등학생부터 중년의 부부까지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는 곳이 태백산인 게다.

벌써 다 왔네, 아쉽다
“하하~ 호호~ 깔깔깔~” 웃고 즐기며 걷는 사이 드넓은 평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서남쪽으로 국립공원 소백산, 북쪽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 동북쪽으로는 태백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은 어디에 비길 데 없이 으뜸이다. 어른 허리 정도 오는 나무들이 드넓은 평전을 가득 메우고 있다. 봄에는 철쭉꽃으로, 겨울에는 눈꽃으로 찾는 이의 눈을 더욱 즐겁게 하는 곳이다. 애석하게도 눈꽃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 광활함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1 태양빛을 받으며 주목군락지를 넘는 등산객. 2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하듯 솟아 있는 주목. 3 황지연못은 야간 조명이 설치되어 사진 찍기에 좋다. 4 태백산의 절경을 카메라에 담는 데 여념이 없는 등산객.
남 쪽으로 400m 거리에 돌로 성을 쌓은 듯한 ‘ㄷ’자 모양의 제단도 자리하고 있다. 매년 10월 3일 개천절이면 이곳에서 단군제를 지낸다고 한다. 천제단은 손꼽히는 해돋이 명소로 장관을 연출한다. 해마다 1월 1일이면 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평전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정상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소백산의 칼바람에 버금가는 매서운 바람이 이곳에서도 예외 없이 불기 때문이다. 산 바닥을 치고 오르는 강한 바람은 작은 모래를 머금고 있기 때문에 맨살로 맞으면 따가울 수 있다. 마스크로 얼굴을 보호하는 것이 상책이다.

장관을 볼 수 있는 용연동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장독대를 연상시키듯 탐스럽게 내린 눈.
천 제단에서 당골로 내려가는 길 역시 평탄하다. 단종비각이 오른쪽 어깨에 인사를 하면 본격적인 하산길이다. 비각에서 반재 삼거리까지는 완만하다. 천연 눈썰매를 즐기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자칫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단군성전까지 가는 당골 계곡, 얼음 아래로 졸졸 물이 흐른다. 둥그런 돌 위에 소복이 내려앉은 눈이 소담스럽기 그지없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것이 시골집 장독대를 연상시킨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콧노래를 부르며 1시간 30분가량을 내려오면 “벌써 다 왔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것이다. 아쉬운 태백산 트레킹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석탄박물관과 눈썰매장은 아이들에게 인기
당골 매표소로 하산하는 길에 태백석탄박물관을 잠시 들러보면 좋다. ‘석탄과 자연 그리고 인간’이라는 주제로 석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역사성을 재조명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물이 마련되어 있다. 1, 2전시실은 지질관과 석탄의 생성에 대한 전시물로, 3~5전시실은 채굴과 안전에 대한 전시물로, 6전시실은 지금은 볼 수 없는 탄광촌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물로 꾸며놓았다.

무엇보다 체험갱도관이 있는 8전시실이 가장 인기가 좋다. 전시실을 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데 탄광 갱도를 내려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신기하다. 또 갱도에서 작업하는 광부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아이들의 집중도가 높다. 광부들의 채굴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에너지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기회가 될 것이다. 석탄박물관 옆에 위치한 태백산썰매장도 어린이들에게 인기다. 2월 말까지 운영된다.

하늘 높이 솟은 전나무 군락지. 작대를 꽂은 듯 기상이 대단하다.
멈춰진 시간을 그대로 옮겨오다
화전민이 많이 살았던 강원도 지역의 민가 형태는 여느 지방의 것과 다르다. 이른바 너와집이 그것인데 이것은 소나무, 전나무, 참나무 등의 널빤지로 지붕을 이은 집이다. 130년 전에 만들어진 보기 드문 큰 규모의 너와집을 태백시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다. 바로 상장동에 자리한 토속음식점 ‘너와집’이다.

“문화재 개보수 자격증 소지자가 직접 이 집을 이전하고 복원했어요. 이 나무들 좀 보세요. 이게 황장목이랍니다. 경복궁이나 궁궐을 지을 때 사용하는 나무죠. 그래서 흔히 왕의 소나무라고도 부른답니다.”

산채비빔밥을 주문한 사이 주인장이 집의 내력에 대해 설명해줬다. 1987년부터 태백에서 문화운동을 하고 있다는 그는 폐광 이후 화전민들의 문화를 복원해야겠다는 생각에 현재의 너와집을 구입해서 1994년에 현 위치로 이전·복원했다고 한다. 안방, 도장방(창고), 사랑방, 외양간, 까치구멍(환기구), 삿갓지붕, 코클(실내 조명) 등 일반 가옥에서 보지 못했던 너와집의 특징에 대해서 지루하지 않게 설명해주니 밥값이 아깝지 않다.

기왕에 태백 여행을 계획한다면, ‘2012 태백산 눈 축제’에 맞춰서 방문해도 좋겠다. ‘눈, 사랑 그리고 환희’라는 주제로 1월 27일 금요일부터 2월 5일 일요일까지 10일간 개최된다. 19회를 맞는 이번 축제는 예년보다 눈 조각 전시장을 두 배로 확장해 도심 곳곳에서도 환상적인 눈 조각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했다.

눈이 있어 눈이 즐거운 곳, 태백에서 짧은 2월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 채우길 바란다.

태백석탄박물관 전경. 보기 드문 큰 규모의 너와집에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공간이 다 들어차 있다. 토속음식점 너와집의 산채비빔밥(사진 위부터).

함께하면 좋은 곳

◆ 구문소
태백시의 남쪽 황지천과 철암천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소(沼)로 1억5천만 년에서 3억 년 전 사이에 만들어졌다. 눈으로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푸르다. 인근에 기암절벽, 계곡 등과 함께 산책로가 잘 가꿔져 한 시간 정도면 돌아보기에 좋다. 위치 태백시 동점동

◆ 용연동굴
태백에서 1박을 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방문하면 좋다. 약 3억 년 전부터 생성되기 시작한 석회동굴로 각종 석순과 종유석이 즐비하다.
관람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요금 어른 3,500원, 청소년 2,500원, 어린이 1,500원 위치 태백시 화전동 산 47-69
문의 033-553-8584

◆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고생대 지층 위에 건립된 자연사박물관이다. 삼엽충을 비롯한 매머드 화석 등의 전시물을 통해 지구 생명 탄생의 신비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지하 체험장에는 놀이와 학습을 겸한 공간이 마련되어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다.
관람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요금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위치 태백시 동점동 295
문의 033-550-2766, www.paleozoic.go.kr

◆ 황지연못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로 태백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야간에는 오색찬란한 조명이 점등돼 더욱 운치 있다.
입장요금 무료 위치 태백시 황지동 25-2
문의 033-550-2131

◆ 너와집
황지연못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자리한 토속음식점. 누룽지와 된장찌개가 함께 나오는 산채비빔밥이 7천원, 한상 가득한 너와정식이 1만9천원 선이다.
위치 태백시 상장동 208-9 문의 033-553-4669


태백산 등산코스


등산코스 소요시간 코스 거리
유일사 코스 2시간 유일사 입구 →유일사→장군봉→천제단 4km
백단사 코스 2시간 백단사 입구 →반재→망경사→천제단 4km
당골 코스 2시간 30분 당골광장 →반재→망경사→천제단 4.4km
문수봉 코스 3시간 당골광장 →제당골→문수봉→천제단 7km
금천 코스 4시간 금천 →문수봉→부쇠봉→천제단 7.8km

여행 정보
태백산도립공원 입장요금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700원
눈썰매장 이용요금 성인 5,000원, 어린이 4,000원
주차요금 대형 4,000원, 소형 2,000원
문의 태백산도립공원 033-550-2741, http://park.taebaek.go.kr, 태백시청 문화관광과 033-550-2081

찾아가는 길
태백산도립공원 유일사 매표소(태백시 혈동 260-17), 당골 매표소(태백시 소도동 325). 유일사 매표소에서 당골 매표소까지 택시로 이동할 경우 요금은 15,000원 내외(할증 적용 구간).
고속버스 동서울터미널-태백행(첫차 오전 6시, 막차 밤 11시) 1일 30회 운행, 3시간 20분 소요
기차 청량리역에서 태백행(첫차 오전 7시, 막차 밤 10시 40분) 1일 6회 운행, 4시간 20분 소요

여행작가 임운석은…
2001년 본인보다 여행을 1% 더 좋아하는 아내와 결혼해 평생 여행만 하며 살자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니던 외국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전업 여행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대 때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신인상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문화·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이며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작가, 국내 아웃도어 전문업체의 로드플래너 및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빛과 바람 그리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http://roomno1.blog.me/)’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글&사진 / 여행작가 임운석>